연산군의 통치 말기는 그의 폭정과 비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특히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며 국가 재정을 낭비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신하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도성 주변에 세운 금표는 단순한 경계 표시가 아니라, 그의 권력을 과시하고 사냥터로 삼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가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국가의 자원을 어떻게 낭비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연산군의 지출은 세금 수입을 초과하게 되었고, 이는 조정의 신하들로 하여금 더 이상 참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연산군의 통치 아래에서 신하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잔혹한 통치에 굴복했으나, 결국 이들은 반발의 기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연산군 8년에 삼정승들이 그의 재정 운용을 비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