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이야기

몽골군은 귀주성을 빠르게 함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귀주성의 방어는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2025. 3. 5. 13:50

귀주성에서의 항전은 고려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그곳에서의 싸움은 단순한 군사적 저항을 넘어, 민족적 자긍심과 단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귀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은 몽골군의 침략을 저지하고자 했고, 이곳이 뚫리면 고려 전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성이 대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하늘이 돕는 것이라고 여겼고,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몽골군은 귀주성을 빠르게 함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귀주성의 방어는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귀주성을 지키던 박서와 그의 군사들은 몽골군의 다양한 공격에 맞서 싸우며, 성을 방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들은 구름사다리, 불을 붙인 장작, 땅굴 등 몽골군이 사용하는 모든 전술에 맞서 저항했다. 특히 박서는 대우포를 사용해 몽골군의 구름사다리를 부숴버리며, 귀주성을 지키기 위한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려 중앙군의 지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려는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중앙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결과 귀주성의 방어는 전적으로 성 안의 군사와 주민들의 힘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귀주성의 방어가 굳건했던 만큼, 몽골군은 예상치 못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어느 날, 귀주성의 남쪽 문을 둘러싼 몽골군이 갑자기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귀주성에서 항쟁을 이어가던 김경 장군의 기습 공격 덕분이었다. 그는 성문을 열고 몽골군에게 돌진하며 화살을 쏘았다. 김경 장군은 몽골군의 화살에 맞고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그의 용기와 결단력은 성 안의 군사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결국, 몽골군은 김경 장군과 그의 소규모 결사대의 기습 공격에 당황해 퇴각하게 된다.

김경 장군과 그의 12인의 결사대는 귀주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들의 결단력은 결국 몽골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박서와 귀주성의 주민들은 김경 장군을 맞이하며 큰 절을 올렸고, 서로의 희생과 노력을 인정하며 감정적으로 교감했다. 이러한 모습은 귀주성에서의 저항이 단순한 군사적 싸움이 아닌, 민족적 단결과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귀주성의 전투는 고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며, 이를 통해 고려의 저항 의지와 민족적 자긍심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전투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싸운 고려의 용기와 결단력을 상징하며, 이후의 역사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사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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