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속으로 현대정치

6월 민주항쟁과 노태우 정부의 출범: 한국 민주화의 전환점

그래도 대한민국 2024. 12. 16. 16:27

6월 민주항쟁과 노태우 정부의 출범: 한국 민주화의 전환점
1987년, 한국 사회는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요구가 고조되는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6월 민주항쟁의 전개와 그 결과로 나타난 정치적 변화, 그리고 노태우 정부의 출범과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1. 6월 민주항쟁의 발발
계속되는 정권의 폭력성에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격렬해졌고, 1987년 6월 10일, 수십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은 6.10 국민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들은 "호헌철폐, 독재 타도, 민주헌법 쟁취"를 외치며 20일간의 민주항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합의 배신한 4.13 호헌조치는 무효임을 전 국민의 이름으로 선언한다"는 결의를 다지며 민주화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이러한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노태우를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간선제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습니다.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를 강제 진압하였으나, 국민의 민주화 요구는 계속되었습니다.

2. 6.29 민주화 선언
1987년 6월 29일,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과 평화적 정권 이양, 정치활동 규제 철폐, 구속 인사 석방 등의 내용을 담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으로 인해 1987년 10월 여야가 합의하여 5년 단임제와 대통령 직선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9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노태우 정부의 출범과 정치적 한계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여당 후보인 노태우와 야당 후보인 김영삼, 김대중 등이 출마하였습니다. 하지만 야당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적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이듬해인 1988년,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야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여소야대의 정국이 형성되었습니다.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가운데, 국회는 제5공화국 청문회를 열어 전두환 등 신군부의 비리를 조사하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4. 삼당 합당과 정치적 변화
여소야대 상황과 민주화 요구의 확대 등으로 정치적 어려움에 직면한 노태우 정부는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1990년 노태우 중심의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을 통합하는 3당 합당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습니다.

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의 공동선언은 "민주 번영 통일을 이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의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합당은 정치적 정세의 변화를 예고하며 한국 정치에서 민주화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국민의 의지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어떻게 집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출범했으나, 그 과정에서 여전히 권위주의적 한계를 드러내었습니다. 이후 정치적 변화와 민주화 요구의 확산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근현대사#한국사#광복#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