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최영 장군에게 군사 오만을 주고 출전하게 되었지만, 그는 전투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군사력이 80만에 달했던 시점에서, 5만의 병력으로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투덜거리면서도 출발하게 된다. 그러나 이성계는 장마철에 접어들며 압록강을 건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철군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최영은 그의 요청을 무시하고 군사들을 설득하여 계속 나아가도록 한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심하게 된다. 이 사건은 역사적으로 '위화도 회군'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경을 향해 군사들을 돌리게 만든 전환점이었다. 최영 장군은 이성계의 결정에 반대했지만, 군인들은 생존 본능에 따라 이성계의 선택에 따르게 된다. 이성계는 군사들을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최영 장군은 억울하게 끌려가게 된다.
최영 장군은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에 의해 부정 축재 혐의로 처형된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후세에 전해지며, 자신이 억울하게 죽는다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성계는 그의 말에 따라 최영의 무덤에 풀이 나지 않도록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그 무덤은 '적분'이라 불리게 된다. 반면, 이성계의 무덤은 후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후, 우왕을 갈아치우고 더 만만한 창왕을 세우지만, 그는 창왕이 공민왕의 핏줄임을 알기 때문에 이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 한다. 이성계는 창왕을 폐위할 명분을 찾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결국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을 선택하게 된다. 공양왕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 시점에서 이성계와 정도전은 실권자로서 권력을 쥐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정몽주와의 갈등이 격화된다. 정도전은 고려를 완전히 혁신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우자는 주장을 펴고, 반면 정몽주는 고려를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의견 차이는 결국 갈등으로 이어지며, 서로를 적으로 여기게 된다.
이성계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강화해 나가고, 정몽주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이성계는 정몽주에게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성계의 결단은 조선 왕조의 출발을 예고하게 된다. 이성계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든 정몽주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역사적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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