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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예언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창업이 천명과 인심에 바탕을 둔 것이지, 예언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즉위 17년째인 1417년 6월, 태종은 서운관에 보관된 모든 예언서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그가 예언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에도 태종은 전국의 예언서를 걷어 없애라는 어명을 또 한 번 내리게 된다.
이 시기에 조선에서 발생한 한 사건은 예언의 힘에 대한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개성에 사는 선비 김위의 외동아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김위는 사랑하는 아들을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뒤졌지만, 6년이 지나도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아들의 신주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이웃의 소식으로 아들이 황해도 재령군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6년 만에 마주한 아들은 수척해 있었고, 그의 입에서 유괴당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들을 유괴한 남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굴 속에 아이를 가두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을 주며 키웠던 것이다. 이러한 유괴 사건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저서인 '성호사설'에서 언급된 '염매'와 연결될 수 있다. 염매는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기 위해 귀신을 이용하는 저주법으로, 아이를 유괴한 뒤 음식으로 유인해 살해하는 잔인한 방법이었다. 태자귀라 불리는 이 영혼은 깊은 원한을 품고 떠돌며 사람들에게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끔찍한 방법으로 태자귀를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태자귀의 존재를 빌미로 부잣집을 찾아가 협박을 통해 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려 했다. 태종과 세조 등 조선의 왕들은 이러한 악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
결국, 예언서와 관련된 사건들은 조선 사회에서 예언의 힘과 관련된 두려움을 드러내며, 인간의 악행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언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은 역사 속에서 인류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전설이나 민담으로 그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한다. 조선 시대의 예언과 그에 대한 믿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로 남아 있으며, 과거의 교훈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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